'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이름은 인터밀란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 뉴캐슬전과 8일 풀럼전에 선발 출장하면서 많은 체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이번 인터밀란전 보다는 14일 리버풀전 선발 출장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풀럼전 골로 인터밀란전 선발 출장에 대한 변수가 생겼지만, '누구도 꿰뚫 수 없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머릿 속 생각은 '박지성은 인터밀란전 보다 리버풀전이 제격이다'는 것이 그 요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리버풀전은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3연패 여부가 달린 중요한 경기이자 '장미전쟁'으로 회자되는 라이벌 대결이기 때문이죠. 챔피언스리그도 챔피언스리그지만 리버풀전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맨유의 선수층은 다른 유럽 명문 클럽보다 두껍고 탄탄하기 때문에 인터밀란과 리버풀을 누를 자신감이 있었지요.
그래서 5일과 8일 경기에 선발 출장했던 박지성이 인터밀란전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동안 큰 부상으로 부침을 겪었던 나날이 길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자신을 선발 출장 시키지 않았던 겁니다. 더욱이 미드필더진에서 가장 많은 활동량을 자랑하는 만큼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3연속 선발 출장하는 것은 앞으로 남은 일정에 '독'이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박지성이 선발 출장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전술적인 요소와 연관이 깊습니다. 퍼거슨 감독 그리고 맨유 입장에서 이번 인터밀란전은 반드시 이겨야했던 경기이기 때문에 '허리 싸움을 펼칠' 미드필더진에서 최적의 조합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지난 시즌 맨유 더블 달성의 키워드였던 '스콜스-캐릭' 중앙 미드필더 조합을 인터밀란전 승리 카드로 꺼내든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강팀과의 경기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팀 공격을 진두지휘했던 라이언 긱스가 자신의 원래 자리였던 왼쪽 윙어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며 오른쪽 윙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선발 출장은 거의 매 경기 고정이었습니다.
맨유는 전반 4분 네마냐 비디치, 후반 4분 호날두의 골로 2-0 승리를 거뒀지만 자칫 인터밀란에게 골을 허용하여 8강 진출이 좌절될 뻔했습니다. 전반 28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골포스트를 맞춘 슈팅과 36분 데얀 스탄코비치가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날린 중거리슈팅, 후반 14분 아드리아누가 골포스트를 맞춘 슈팅, 후반 28분 즐라탄의 헤딩슛은 '운'이 좋았다면 골이 될 뻔했습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네 장면 모두 측면에서 전개된 골 기회 였습니다. 맨유가 전반 24분까지 58-42(%)의 볼 점유율 우세를 나타낸 이후부터 인터밀란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빈도가 늘어났던 것은 '1차전에서 박지성에게 졌던' 더글라스 마이콘의 오른쪽 측면 오버래핑을 차단하지 못하면서 부터 였습니다. '비에라-캄비아소-사네티'로 짜인 인터밀란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맨유 미드필더진에 밀리면서 마이콘에 대한 공격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죠.
맨유의 약점은 오른쪽 윙 포워드나 다름없는 마이콘의 오버래핑에서 드러났습니다. 긱스가 왼쪽 측면과 최전방에서 공격에 집중하다보니 '긱스-에브라' 사이의 빈 공간이 벌어지면서 마이콘이 이를 노리며 전반 25분 이후부터 맨유 왼쪽 옆구리를 집중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맨유의 왼쪽 수비는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경기 초반 맨유의 기세에 눌려있던 인터 밀란이 공격을 주도하는 모습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맨유가 쉽게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에브라-비디치-퍼디난드-오셰이'로 짜인 포백이 평소 처럼 끈끈하고 견고한 수비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즐라탄은 몇 차례 문전에서 골 기회를 잡았던 것 이외에는 비디치와 퍼디난드에게 밀리면서 움직임이 활발하지 못했고 마리오 발로텔리는 오셰이의 발에 묶여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두 선수를 뒷받침하던 스탄코비치는 '스콜스-캐릭' 조합이 포백과의 간격을 좁히면서 철저하게 압박을 가하다보니 공격력에 이렇다할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이는 인터밀란이 마이콘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더라도 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자 퍼거슨 감독의 '전술 승리'였습니다.
맨유가 1차전에서 마이콘을 꽁꽁 견제하는데 주력했다면 이번에는 '즐라탄-발로텔리' 투톱을 봉쇄하는 것, 다시 말해 마이콘을 막지 못하는 것을 어느 정도 감수를 하더라도 적어도 골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작전이었습니다. 적어도 무실점은 보장되어야 8강 진출을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박지성의 활용도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박지성은 후반 37분 웨인 루니를 대신하여 교체 투입되었습니다. 박지성 카드를 앞세워 2-0 승리를 굳히겠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의도였죠. 얼핏보면 소위 '잠그기'를 쓸 것 같아 보였지만, 수비에 치중을 두던 맨유의 기세는 박지성의 교체 투입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맨유를 추격하려는' 인터밀란 선수들의 힘을 완전히 빼놓겠다는 것이죠. 박지성은 후반 39분과 41분 팀의 역습 기회를 제공하면서 인터밀란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뿌리쳤습니다. 후반 45분에는 페널티박스 왼쪽 최후방에서 마이콘의 공격을 끊는 등 조커로서 제 몫을 다하면서 '짧게나마' 팀의 2-0 승리를 공헌했습니다.
비록 박지성이 인터밀란전에서 늦은 시간에 교체 출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4일 리버풀전 맹활약을 위한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지성이 교체로 투입된 것은 맨유 전력에 여전히 중요한 선수임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인터밀란전 단 한 경기만으로 팀 내 입지를 놓고 일희일비식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중요한 경기들이 더 남아있는 만큼, 박지성의 선발 제외는 '무척' 아쉽지 않습니다.(저로서도 박지성이 선발 출장하기를 바랬지만, 14일 리버풀전을 비롯한 남은 경기들이 많은데다 부상이 많았던 만큼 교체 출장이 깔끔했던 것 같습니다. 결장보다 나은 거니까요.)
적어도 박지성 중심의 시각보다 맨유 중심의 관점에서 본다면, 박지성을 조커로 기용한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은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박지성의 선발 제외보다 더 의아해야 할 것은 '박지성 경쟁자' 루이스 나니가 풀럼전에 이어 인터밀란전에서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By. 효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