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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0 10대였던 나, 운동부가 '운동기계'로 보였다 (27)

0. 우리는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운동 선수들을 보면서 장하고 대견스럽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는 국민적인 자긍심으로 이어질때가 있습니다. IMF 시절 박찬호와 박세리가 미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에 삶의 활력소와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 해외 무대에서 활약중인 한국인 선수를 가리켜 '민간 외교관'이라고 칭할 정도로, 운동 선수들은 사회에서 막강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1. 하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이 화려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한국 스포츠의 병폐인 체벌의 피해자이기 때문이죠. 지난 시즌 남자 프로배구 최우수 선수(MVP)이자 대표팀의 에이스인 박철우가 이상렬 코치에게 전치 3주 폭행을 당했으니까요. 국내 프로배구 최고의 선수도 체벌받는 것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자 빛과 그림자 입니다.

박철우 폭행 파문이 사회적인 큰 파장을 일으킨 것 처럼,  한국 스포츠는 프로와 아마추어, 성인과 미성년자를 막론하고 구타로 얼룩져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는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국위 선양했지만 체벌 문제 또한 수 없이 도마위에 올라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구타 및 얼차려가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특히 미래에 한국 스포츠 중추로 자리잡을 10대들은 폭력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성인 선수는 박철우처럼 언론에 폭행 사실을 공개하거나 2007년의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 선수들처럼 감독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할 수 있지만 10대들은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리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것은 당연합니다. 폭력을 일삼는 감독과 코치는 어른이기 때문에 스승의 행동을 보면서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망주들은 어릴적부터 맞으면서 운동했기 때문에 '맞아야 잘할 수 있다'는 개념이 쌓이게 됐고 그 결과는 체벌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코칭스태프 혹은 선배 선수가 군기 잡기 위한 차원이라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체벌 및 얼차려는 기본이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매 맞기 싫어 운동을 그만두거나 정신적 또는 육체적인 피해를 당했던 10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후배 선수를 때리는 선배 선수도 실질적으로는 체벌의 피해자나 다름 없습니다.

3. 제가 초중고등학교 다녔을 적에 저희 학교 축구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참고로 저는 만 25세입니다.) 맞고 다니는 것은 항상 기본이었으니까요. 맨땅 운동장에서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으면서, 코치에게 뺨을 맞으면서, 다리를 걷어차이는 장면을 수 없이 봤습니다. 그것도 욕설과 폭언을 들으면서 말입니다. 남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합숙소도 다를 바가 없죠. 그런 과정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타 문제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고 여전히 악순환이 뿌리 뽑히지 않는 원인이 됐습니다.

물론 맞아가면서 운동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 학생도 체벌의 사각지대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반 학생 중에 일부는 매를 맞으면 그 즉시 선생에게 반항하거나, 부모님에게 이르거나, 체벌 동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리거나, 경찰서에 신고합니다. 요즘에는 학교마다 체벌 규정이 있어서 체벌에 대한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학교측의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제가 있을때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과도한 체벌을 당했던 예전의 풍경과 사뭇 다르죠. 그러나 운동 선수들은 그럴 힘도 없습니다. 맞고 다니는 것은 일상 다반사였으니까요.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하루 종일 맞고 다니며 '운동 기계'로 성장하는 모습 이었습니다.

4.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보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량이 많아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녔죠. 그런데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과 친구에게 공부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한 친구가 어느 날부터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알고봤더니 축구부 가입 때문에 며칠 동안 못나왔더군요. 그러더니 다시 학원에 나오면서 축구부와 학원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했지만,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축구부 훈련과 학교 공부로 인해 피로에 시달리며 학원에서 조는 장면이 여럿 목격되었고 집중력까지 약해졌습니다. 결국에는 학원을 그만두고 축구에 전념하고 말았죠.

지금의 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친구는 축구부 가입과 동시에 학원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초등학생에게는 그 스케줄이 너무 무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운동과 공부를 모두 열심히 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운동이 제대로 안된다면 공부라도 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단계로 올라갈수록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박탈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엄청난 체벌과 얼차려를 겪으며 성장합니다.(제가 그 친구를 이 글에 포함시킨 이유는 운동부들이 운동만 할 줄 아는 운동기계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도 친구들과 함께 공부 열심히 하고 싶었던 존재였기 때문이죠.)

5. 중학교때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축구부들이 맞는 장면을 여러차례 목격 했습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야간까지 하루 종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합니다. 물론 오전에는 훈련복에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지만요. 하지만 점심 시간이 되면 합숙소로 내려가 다시 운동에 전념해야 합니다.

문제는 축구부들이 교실에서도 선생들에게 맞고 다닌 것입니다. 중3때 '운동부와 관련없는' 체육 선생이 저와 함께 같은 반에 있던 축구부를 아무 없이 머리를 때리고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습니다. 어떤 선생은 축구부를 일반 학생으로 잘못 알았던 바람에 숙제를 안했다는 이유로 뺨을 때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축구부 앞에서 이런 말까지 하는 선생도 있었습니다. "축구부 때문에 수업 분위기 망친다", "야. 축구부. 졸지 말란 말이야"라고 말입니다. 축구부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운동으로 인한 피로를 이기지 못해 수업 시간에 조는 축구부원이 여럿 있었습니다.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했던 축구 부원을 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6. 고등학교때는 축구부들이 학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 거두고 대학에 진출하기 위해 하루 종일 축구에 전념해야하기 때문이죠. 편협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운동기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축구부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중학교때는 서로 알았던 친구들이었는데 고등학교때는 운동장에서 얼굴만 보고 말았죠.

일부 선생들은 학생들 앞에서 축구부의 존재에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선생은 "축구부가 우리학교에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어. 인문계 고등학교 왔으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냐. 내가 교장이라면 축구부 없앴을거야"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학생을 열심히 공부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축구부에 대해서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는 선생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축구부들은 교실에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운동했지만요.

고등학교 축구부들도 운동장에서 어김없이 맞으면서 운동했습니다. 특히 축구부원의 학부모 앞에서 과감히 매를 드는 코치의 모습이 참으로 얄미웠습니다. 학부모들은 아들이 합숙소에서 먹을 밥을 지으면서, 아들이 코치에게 몽둥이 찜질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만 했습니다. 제3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장면이었습니다. 학부모와 축구부원 모두 체벌에 길들여진 것입니다.

7. 제가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모두 몇년 전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무조건 때리고, 새벽부터 야간까지 운동시키는 풍토는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며칠전 PC방에서 야간 훈련 때문에 빨리 가야한다고 서로 소란부리던 저의 모교 축구부들을 봤으니까요. PC방에 왔던 축구부들은 20분 동안 잠깐 인터넷을 하다가 다시 사라졌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가슴아팠죠. 여전히 체벌 문제가 끊이지 않고 유망주를 운동 기계로 키우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풍토가 그저 야속할 따름입니다. 박철우 폭행 파문도 문제지만 유소년들의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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