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지성 (C) 티스토리 PicApp]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유럽축구 경기가 열릴 때 입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고 화려한 개인기를 보면서 마음속의 열광에 젖을때가 많습니다. 특히 젊고 싱싱한 유망주가 대형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지구촌 축구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특히 호나우두가 FC 바르셀로나에서 거침없는 골 감각을 발휘하며 축구황제의 도약을 알렸던 1996년은 제가 축구를 좋아했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이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좋아합니다. 한국 선수들이 축구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고의 리그인 잉글랜드에서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누비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치열한 볼 다툼을 벌이는 모습 그 자체가 저의 두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활약을 보기 위해 밤을 새며, 혹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TV 리모콘에 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경기 한 시간 전에 출전선수 명단을 확인하는 것,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에 들어가 선수 평점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저에게 각별합니다. 한국인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고 맨유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클럽에서 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누구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꿈을 박지성이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FIFA 클럽 월드컵, 칼링컵 우승 메달과 함께 말입니다. 특히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 메달을 받은 것은 아시아 선수 어느 누구도 이루기 힘든 기록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영웅'으로 일컫는 그의 저력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지성과 맨유의 경기를 즐겨보는 젊은 사람들을 말하는 '박지성 세대' 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SBS 축구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교토 퍼플상가(현 교토 상가)의 경기를 보면서 박지성의 활약을 꾸준히 지켜봤습니다. 때로는 일본 NHK에서 방영되는 J리그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박지성의 골과 어시스트 장면을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더니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의 경기를 보며 박지성이 유럽 축구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지금은 맨유에서의 성공에 기뻐 했습니다.
박지성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입니다. '박지성 절친' 파트리스 에브라는 지난 7월 24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지성은 완전히 '한국의 왕(the king of korea)'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박지성을 위해 손을 흔든다. 한국의 베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한국에서 박지성 열기가 높다는 것을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 열기는 맨유가 한국에서 '국민팀'으로 발돋움했던 계기가 됐습니다. 맨유는 K리그와 국가대표팀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그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습니다. 박지성 세대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사진=박찬호 (C) 티스토리 PicApp]
하지만 제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박지성 이전에는 박찬호를 열렬히 좋아했던 것 말입니다. 11일 저녁에 MBC에서 박찬호 스페셜 방송이었던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박찬호를 좋아했던 추억들이 저의 머릿속에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박지성을 좋아하는 것 처럼, 예전에는 박찬호를 열렬히 좋아했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제가 박지성 세대 이전에는 박찬호 세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현재 메이져리그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박찬호의 경기를 통해 메이져리그 경기를 자주 봤습니다. 박찬호의 LA다져스가 이길때마다 좋아했고, 특히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었을때는 마치 저의 일인 것 처럼 기뻤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들 모두가 박찬호의 승리를 기뻐했고 패전 투수가 되거나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을때는 아쉬워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져리거였던 박찬호의 맹활약은 IMF 경제 위기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됐습니다. 척수병으로 고생하는 타이거 JK가 박지성에 희망을 가지는 것 처럼, 국민들은 박찬호의 투구 동작에 인생의 활력소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박찬호가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날에는 학교에서 쉬는시간마다 TV를 틀으며 박찬호의 경기를 봤습니다. 박찬호가 삼진 잡으면 반 전체가 환호성을 질렀고 다져스가 득점을 올릴때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학교 선생이 개인 사정으로 수업에 빠지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박찬호 경기를 봤던 적도 있었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뉴스에서는 박찬호의 경기를 TV로 지켜보며 환호하는 회사 직장인들, 서울역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그 당시의 박찬호 경기는 항상 챙겨봤으니까요.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동료였던 노모 히데오,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게리 셰필드의 이름도 아직 기억에 납니다. 일본인 투수 노모는 독특한 투구폼으로 유명했고 피아자와 몬데시는 '피하자'와 발음이 비슷하고 '몬데이~시'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개그맨들이 개인기 소재로 삼았습니다. 몬데시는 박찬호 경기때마다 홈런과 안타를 날리며 국내에서 '박찬호 도우미'로 각광받았고 그 뒤를 잇는 셰필드의 타격폼과 염소 모양의 수염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1997년에 SBS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박찬호-노모-피아자-몬데시를 흉내내던 코너 말입니다. 박찬호 신드롬은 국내 방송계까지 강타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의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2002년에는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져스에서 먹튀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하면서 5년간 845억원의 어마어마한 계약을 맺었으나 제구력 난조 및 허리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져 결국 내리막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845억원이라는 거액은 박찬호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줬고 메이져리그에서 전례를 보기드문 '먹튀 리스트'에 박찬호의 이름이 포함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박찬호를 향한 인기가 분노로 돌변했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안티팬들이 기하급수로 늘었습니다.
저의 머릿속에도 박찬호라는 존재감이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일이 없이 없는데다 당시에는 야구보다 축구가 대세였기 때문에 유럽축구와 K리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찬호가 재기를 벼르던 2000년대 중반의 저는 군인 이었습니다. 바깥 소식을 접하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박찬호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메이져리그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저의 고참은 항상 박찬호를 욕하고 다니더군요. 군대에서 제대했던 2007년에는 박찬호가 뉴욕 메츠에서의 부진으로 마이너리그로 추락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거기서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박찬호는 2008년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LA 다져스에서 재기에 성공하여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실력으로 과시했습니다. 전성기 시절처럼 10승 이상의 성적을 올린것은 아니었지만 선발과 불펜 요원을 오가며 팀에서 맡은 일을 척척 도맡았습니다. 비록 자신의 인기는 전성기 시절 같지 않았지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뜨는 박찬호 관련 소식이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많았으니, 대중들도 박찬호를 다시 반겼습니다.
박찬호의 올해 나이가 37세 입니다. MBC 스페셜에서 박찬호의 나이가 37세로 소개되는 모습을 보니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찬호가 전성기를 쓰기 시작했던 1997년의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고 지금은 20대 중반입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1등 신랑감이었던 박찬호도 이제는 2명의 예쁜 딸이 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 세월은 상류에서 하류로 향하는 물 처럼 흐르고 말았습니다. 비록 박찬호 시대는 끝났지만, 어제 MBC 스페셜을 보면서 그 추억이 달콤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박찬호가 언제까지 메이져리그에서 공을 던질지는 모릅니다. 메이져리그에서 40세 넘는 선수가 선발 등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처럼, 박찬호도 그 중에 한 명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때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얻었던 박찬호의 선수 말년은 다른 노장들보다 화려했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By. 효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