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두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세 명의 선수들은 축구팬들에게 '세계 3대 축구 천재'로 불리는 존재들입니다. 남들보다 더 우수한 축구 실력을 뽐내고 있기 때문에 축구 천재라는 별칭이 붙여진 것이죠. 물론 세 선수만이 축구 천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호비뉴, 카림 벤제마, 이니에스타, 페르난도 토레스, 스티븐 제라드 등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들만 하더라도 여럿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가 세계 축구계의 양대산맥을 형성했죠.
그러나 한국 축구에서는 이 같은 축구 천재들을 찾기 힘듭니다. 그동안 언론에서 한국 축구의 미래를 빛낼 될성부를 떡잎이 있으면 '축구 천재', '축구 신동'이라는 수식어를 남발하며 호돌갑 떨었을 뿐, 선수 생활 말년까지 탄탄하게 성장했던 축구 천재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언론에서 축구 천재로 불렸던 선수들의 주된 공통점은 온갖 시련에 직면하는 아픔에 시달렸습니다. 축구팬 욕심 같아서는 한국판 카카-호날두-메시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진정한 축구 천재로 거듭난 선수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축구 천재들이 비운의 선수 생활을 보냈기 때문이죠.
한국 축구는 카카-호날두-메시와 같은 축구 천재를 배출하기 힘든 환경입니다. 동양인 선수의 전반적인 개인 기량이 남미, 유럽 축구 선수들보다 부족한데다 선수 육성 시스템 및 인프라에서도 뒤쳐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 축구 내에서 잘하는 선수에게 '축구 천재'라는 별칭을 붙는 경우가 있지만, 그 선수가 국제 경기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면 '저게 무슨 축구 천재냐?'며 팬들의 빗발친 질타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축구 천재가 2004년 아시아 청소년 대회(U-20) 조별예선에서 부진하던 박주영이었습니다.
그 보다는 축구 천재를 키우는 시스템이 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선천적인 기량이 뛰어나도 체계적인 육성을 받지 못하거나 지도자의 관리 소홀, 축구에 대한 양질의 풍토, 그리고 선수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선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학원 축구에서 동료 선수보다 축구 잘하는 유망주가 있으면 감독과 코치의 지시사항이 줄어들고 관대하게 놔둘때가 종종 있는 것이 한국 축구계의 만연한 풍토입니다. 생맥주도 관리를 철저히해야 맛있는 것 처럼, 특급 유망주가 오랫동안 톱 클래스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우선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축구 천재가 배출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은, 언론에서 축구 천재로 불렸던 선수들도 그 별칭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점입니다. 조민국 울산현대 미포조선 감독은 "고려대 감독 시절에 만났던 축구 천재는 이천수와 박주영이었다"며 두 선수의 능력을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이천수와 박주영은 자신들이 축구 천재임을 부정했습니다. 이천수가 노력파임을 강조했다면 박주영은 그 별칭에 부담감을 느껴야만 했죠.
특히 박주영은 언론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선수입니다. 언론에서 자신의 기사가 보도될 때 '축구 천재 박주영'이라는 말이 매번 흘러나오면서 심적으로 부담이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주위에서 기대하는 것이 지나치다보니 무언가 보여줘야겠다는 조급함에 결국 2005년 후기리그에 이르러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선수 본인은 기량 향상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하는데 바깥에서 축구 천재라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 심적으로 부담되고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심리는 박주영을 비롯한 또 다른 유형의 축구 천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국 '축구 천재'라는 단어가 남발된 것은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TV 시청률, 신문 판매 부수, 인터넷 기사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헤드라인을 크게 잡다보니 유망주를 지나치게 떠주는 문제점이 있었죠. 해당 유망주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심리가 높아지면서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거나 또는 부담감에 직면합니다. 이러한 심리 상태가 세월이 흐를수록 누적되면서, 그 선수는 축구팬이 기대하는 성장 곡선을 달리지 못했습니다. 유망주 시절에 출중한 기량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던 축구 천재들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는 축구만 잘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풍토가 아닙니다. 1980년대 축구 천재로 불렸던 김종부의 사례가 대표적이죠. 김종부는 1983년 U-20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고려대 시절 한국 축구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1986년 고려대 4학년때, K리그 팀인 대우와 현대로부터 거액의 계약서를 받더니 두 개 모두 사인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고려대 체육위원회로 부터 괘씸죄에 걸려 제명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무적 선수로 출전하여 한 골을 넣었습니다. 그러더니 1988년 럭키금성에 입단했지만 이중계약이라는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없이 사라졌습니다.
소위 '비운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선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병수, 최문식, 윤정환, 고종수, 이관우는 한국 축구 최고의 축구 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던 테크니션 이었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김병수는 선수 시절 잦은 혹사에 시달리더니 결국 부상에 발목잡혀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발목과 무릎 수술만 6번했고 아직까지 후유증이 남아있을 정도로 혹사의 여파가 심했습니다. 최문식은 고3때 상대팀의 거친 견제속에 인대 부상을 당하면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윤정환은 뛰어난 공격력과 기술을 지녔지만 몸싸움과 수비력이 뒷받침 되지 못해 '반쪽 선수' 논쟁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종수는 김병수와 더불어 한국 축구의 관리 부재에서 빚어진 희생자입니다. 1997년 청소년 대표팀 시절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대표팀에서 쫓겨나더니 허정무호에서도 외면받으면서 많은 국제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차범근호에서 많이 뛰었을 뿐이죠.) 그러더니 2001년 히딩크호에서는 피로누적 속에서도 대표팀에 꾸준히 차출되어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그해 7월 십자인대 부상으로 1년간의 재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부에서는 고종수의 사생활 문제를 의심스러워 하지만, 그 이전에는 관리 부족이 더 문제였습니다. 이관우는 한양대 시절 교통사고로 긴 시간의 재활을 보내더니 프로에서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윤정환처럼 몸싸움과 수비력 부족으로 반쪽 선수 논쟁에 직면했지만 차범근 감독은 선수 본인의 노력 부족이 더 컸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이천수, 최성국, 권집, 박주영이 축구 천재로 꼽히던 선수들입니다. 이천수, 최성국, 박주영은 잦은 경기 출전으로 인한 혹사에 시달리며 몸이 망가지더니 주위의 지나친 기대 속에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천수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기지 못해 온갖 돌출 행동으로 물의를 빚어 지금까지 고생길을 걷고 있습니다. 권집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수원-부산-전남-전북-포항-대전을 오가는 져니맨 생활이 치명적이었죠. 그나만 박주영이 '운 좋게' 시련의 늪에서 벗어났습니다. 2005년 후기리그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하며 긴 슬럼프의 시간을 보냈지만 AS모나코 진출이 없었다면 '발전 없는 선수'로 비아냥 받았을지 모릅니다. 박주영이 축구 천재 몰락의 대열에서 벗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죠.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로 확실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재능 넘치는 인재들이 꾸준히 배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남들보다 공만 잘차면 '축구 천재'라는 별칭을 남발하고 관리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 축구 발전에 이롭지 못합니다. 언제까지 카카-호날두-메시, 그리고 유럽과 남미 축구를 부러워 할 수 없습니다. 축구 천재의 몰락이 계속되는 한국 축구의 악순환을 뜯어 고쳐야 할 때입니다.
By. 효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