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으면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본선 체제에 돌입 했습니다. 이제 본선까지 남은 기간은 12개월이기 때문에 그 기간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게 됐습니다. 본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수준급 상대들과 꾸준히 겨루어 내공을 키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대한축구협회(KFA)에서도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A매치 데이에 유럽 현지에서 유럽팀과 평가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유럽 월드컵 최종예선 각 조 1위로 통과한 국가와 2차례의 평가전을 치를 계획이죠. 대표팀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잉글랜드, 체코를 비롯해서 그외 수준급 팀들과 겨루면서 국제 경쟁력을 키웠던 경험을 상기하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전에는 강팀과의 경기가 부족한데다 A매치 데이만 되면 국내에서 치른 경기가 빈번해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 아쉬움이 있었죠. 강팀과의 원정 경기는 환영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는 유럽 강팀과의 원정 경기에 앞서, 오는 10월 일본에서 A매치 한일전을 치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10월 일본에서 경기 한 뒤 2010년 3~5월에 한국에서 두 번째 경기를 갖는 정기전 형식이라고 하네요. 1차전은 A매치 데이인 10월 14일에 열리며 2차전은 내년 2월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 이후에 또 한 번 치른다고 합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까지 A매치 일본전을 세 번이나 갖는다는 얘기죠. 한일전은 55년 동안 질기도록 이어졌던 전통적인 축구 전쟁으로서 매번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세 번의 경기 모두 두 나라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일전이 월드컵 16강에 도움이 될 지는 의문입니다. 내년 2월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맞붙는데 두 번씩이나 한일전을 추가로 치르는 것은 대표팀 전력 향상을 기대하기 의심스럽습니다. 이제는 예전에 비해 대표팀 차출이 쉽지 않은데다 해외파 불러들이는 것도 어려운데(그것도 A매치 데이에 가능한 일입니다.), 평가전 치를 기회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오는 10월과 내년 3~5월에 열릴 한일전의 필요성은 떨어집니다. 분명한 것은 일본 말고도 상대할 팀이 여럿 있는데다, 일본보다 강한 팀들도 꾀 있습니다. 그러고도 일본과 경기하겠다는 것은 전력 향상의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물론 긍정적인 것은 있습니다. A매치 데이에 한일전을 개최하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주영(AS 모나코) 나카무라 슌스케(셀틱)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 같은 양국의 해외 스타들이 총출동 합니다. 양국이 최정예 스쿼드로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한일 축구 열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을 것입니다. 특히 공중파 중계 퇴출 위기로 대표팀 인기 하락에 시달리는 일본쪽 입장에서는 한일전 개최를 반갑게 여길 것임이 분명합니다. 또한 한일 양국 모두 막대한 스폰서 효과까지 얻겠죠.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대표팀 전력 강화와는 무관합니다. 월드컵 본선 이후라면 개최하는데 문제 될 것 없지만, 월드컵 본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한일전이 열리는 것은 전력에 우려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외부의 관심이 높다라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은, 한국 대표팀과 레벨이 비슷한데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 대표팀과 상대한다는 것이죠.

허정무호는 지난 1년 5개월 동안 A매치에서 22경기 연속 아시아 팀들과 상대했습니다. 동아시아 선수권 대회,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과 최종예선 때문에 아시아 팀들과 겨룰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본선 조별 무대에서는 아시아 팀들과 대결하지 않습니다. 아시아 팀이 지금까지 16강 진출에 성공했던 경우도 적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7번 월드컵 진출했지만 16강 진출 경험은 자국에서 열렸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이 유일하며, 지난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4개 국가가 본선에서 동반 탈락했습니다.

그래서 허정무호가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향상하려면 유럽을 비롯해서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팀들과 꾸준히 경기해야 합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국제적인 강호들과 경기할 텐데, 본선 이전까지 그 레벨에 맞는 팀들과 꾸준히 경기하여 내공을 단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아공 월드컵 본선 이전에 동아시아 선수권이 있는데 일본과의 두 경기를 추가적으로 치르는 것은 전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아시아 팀들과 경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같은 팀들에 강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눈'을 더 넓혀야 할 때입니다.

만약 허정무호가 강팀과의 경기나 그에 준하는 다크호스에게 패하면 스폰서 효과 감소는 물론 허정무 감독 자질과 대표팀 문제점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호가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밑바탕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0-5로 대패했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강팀과 경기를 치렀던 경험 그 자체는 절대로 무시할 것이 못됩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속담처럼, 선수들에게도 수준급 레벨의 팀과 경기를 치르면서 월드컵 16강 진출을 향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앞날을 넓게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허정무호는 그동안 아시아 팀들과 많은 경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아시아 팀이 아닌 다른 대륙 팀들과 경기합니다. 아무리 11월에 유럽 강팀과 원정 경기를 갖는다고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오는 10월과 내년 3~5월 A매치 데이에 열릴 일본전은 전력 향상과 거리가 멉니다.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정비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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