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2003년 6월 일본 TBS TV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했던 노무현 대통령 (C) 인터넷 영상 캡쳐]

지난 23일 토요일 오전 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최종 라운드 프리뷰 기사를 쓰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다음(Daum) 메인 페이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병원 입원' 이라는 뉴스 기사 제목을  발견 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찰 소환 임박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이것 때문에 무언가 불길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TV를 틀었더니 뉴스속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이라는 문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믿기지 않아 크게 놀라고 말았더니 나중에는 뉴스 앵커의 입에서 '사망, 서거'라는 단어가 나오더군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국가적인 비극이 저를 비롯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긴 것입니다. 서민들을 위해 애써주셨던 '서민 대통령'님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믿기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겁니다. 언젠가는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와 격려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그동안 간절히 했었는데 결국 무산 되었네요. 퇴임 이후에도 서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저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정치에 대하여 아는 것은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 만큼은 높은 사람들의 상징인 '권위 의식'이라는 것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본 것은 딱 한 번 이었습니다.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 였죠. 2003년 4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 한국-일본 경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축구팬들과 함께 경기를 보러 갔었는데 붉은악마 응원석 근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멀리서 봤습니다. 경기 전 그라운드 단상에 올라가 한일전에 대한 축사(축하의 뜻을 나타나는 연설을 말함)를 하시더군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A매치에서 국가 원수가 축사를 하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많던 시절인데다 한일전이 친선경기 성격으로 열린 것이었기 때문에 축사가 가능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귀빈석에서 그라운드로 내려오셨을때 '역시 노짱(노무현 대통령의 별명)의 인기는 못말려' 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했습니다. 6만 관중 그리고 일본 대표팀 서포터스 울트라 닛폰이 보는 앞에서 한일전에 대한 축하의 연설을 하기 위해 내려오는 모습이 부러웠죠.

축사의 내용은 비교적 무난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유의 거침없고 박력 넘치는 억양으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좋은 말들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어떠한 긴장과 말더듬도 없이 유연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축사 내용이 거의 끝나갈 무렵, 노무현 대통령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을 큰 목소리로 강조 하셨습니다.

"일본 이기십시오"

그 순간, 저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경기는 한국과 일본 축구의 자존심이 걸린 A매치 라이벌 경기였는데 상대방의 승리를 바라는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경기 전부터 저렇게 말을 하면 축구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마음 속의 걱정이 들더군요. 심지어 붉은악마 응원석에 있던 3~4명의 축구팬은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이기십시오" 발언에 야유를 보냈습니다. 그러더니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이기십시오"라는 말을 했지만 저의 마음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일반인이면 몰라도 축구팬의 입장에서 보면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죠. 당시 경기장에 있던 축구팬들 또한 저와 마음이 비슷했을 겁니다.

결국에는 일본이 후반 막판에 골을 넣으며 한국을 1-0으로 꺾었습니다.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팀(한국)이 16강 진출에 만족한 팀(일본)에게 홈에서 지는 모습을 보니까 짜증나더군요.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말만 안했어도 좋았는데'라는 마음속 원망을 했습니다. "한국 이기십시오"라는 말을 먼저 하면서 "일본도 함께 이기십시오"라는 말을 나중에 했더라면 한국이 이기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몇몇 언론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이기십시오"라는 발언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더군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저의 유일한 추억은 이것 뿐이었지만 그 내용은 파격적 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19세의 어린 나이이자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시기였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이기십시오"라는 발언을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축구장을 찾은 관중들은 한국의 일본전 승리를 위해 입장료를 지불 하면서 경기장을 찾은 존재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를 조심스럽게 해야하지 않나 싶은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6년 동안은 그런 생각을 계속 했었죠.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그때의 일을 되돌이키면 "일본 이기십시오"라는 발언을 했는지를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적'이 아닌 '동반자'의 관점으로 지켜봐주길 원하는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특히 축구가 그랬습니다. 그동안의 한일전은 매 경기 팽팽한 살얼음 격돌을 하면서 서로를 철저히 적대시 했습니다. 한일전 할때마다 '일본은 반드시 꺾어야 한다', '타도 한국'이라는 문구를 방송에서 쉽게 접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한일 관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한일전에서 "일본 이기십시오"라는 말을 "한국 이기십시오"라는 멘트보다 먼저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과 일본 축구가 서로 발전하는 건설적인 경쟁 구도를 원하던 것이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축구 뿐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등 전 부문에 걸쳐 한일 양국의 적대적인 감정을 좁히기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속뜻이었을지 모릅니다. 참고로, 그해 6월에는 일본 방문 기간 도중 TBS TV가 특별 제작한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해(초난강이 통역했던 프로그램) 한일 양국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자 했죠.

그리고 6만 관중과 울트라 닛폰이 지켜보는 앞에서 "일본 이기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한국인은 과연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난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상에 올라가서 말을 하는 것은 막중한 책임감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노무현 대통령의 남자다운 배짱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이기십시오"라는 돌발 발언은 앞으로도 저의 마음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그리고 떳떳이 밝히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제가 현장에서 직접 봤던것이 가슴에 뿌듯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비록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셨지만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모습 (C) 인터넷 사진 캡쳐]

By. 효리사랑

2010 view블로거대상 엠블럼
Statistics Graph
  • 18,025,234
  • 4915,544
Tatter & Media textcube get rss
BLOG main image
효리사랑(축구감성)
1. 2010 다음 뷰 블로거대상, 대상 수상. 2. 2009~2011년 티스토리-PC사랑 우수 블로그, 3.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 '올댓 축구' 저작자 4. <블로거 라운지> 블로그 강사 5. 이메일 : pulse-s1@hanmail.net
by 효리 사랑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248)
효리사랑-축구 (2002)
효리사랑-쇼핑몰 (2)
효리사랑-여행&나들이 (34)
효리사랑-그 외 스포츠 (71)
효리사랑-일상 (70)
효리사랑-시사 (8)
효리사랑-다이어리 (17)
효리사랑-그외 (43)

효리사랑(축구감성)

효리 사랑'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효리 사랑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효리 사랑'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atter &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