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었습니다. 제가 모 언론사에 글을 기고하던 시절, '기라드' 기성용(20, 서울)이 '한국의 제라드를 꿈꾸는 청년'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적이 있었습니다. 스티븐 제라드(29, 리버풀)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데다 주 포지션이 똑같은 수비형 미드필더, 정확한 패싱력과 한번에 찔러주는 롱패스를 겸비한 공통점이 그 요인이죠.
더욱이 제라드처럼 탄탄한 체구(기성용 : 187cm, 79kg/제라드 : 185cm, 82kg)를 자랑하기 때문에 유럽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체격적인 문제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울의 여성 축구팬들에게 인기를 받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제라드가 리버풀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것 처럼' 서울에 없어선 안될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짙었다는 멘트를 기사에 실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 나왔던 별명이 바로 '기라드'였지요.
그 기사가 모 포털에 올라갔더니 반응은 '예상대로' 좋지 않았습니다. '이천수는 베컴, 이청용은 한국의 호날두로 불리더니 이젠 기라드냐?', '이제 기성용 죽이기냐? 기자야 죽어 너', '정신차려 기자', '기성용, 올림픽대표팀에 뽑혀서 욕먹고 싶니?', '기자양반, 생각 좀 해라' 등등 악성댓글들이 수십개 붙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기성용의 실력과 잠재력에 대해 잘 모르는 팬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러한 반응을 안고 가야만 했습니다. 특히 유럽축구팬들 중에 일부는 국내 선수가 유럽 선수와 비견되는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제가 있었지요.(이러한 팬들의 태도는 안좋은 모습입니다. 댓글 중에 상당수가 비방성 악플이더군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성용의 '대박'을 예상하던 이는 드물었습니다. 그런 기성용은 여론에서 예상하던 것과는 다르게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난해 19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팀 전력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결정타였죠.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달 1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기성용은 이청용과 더불어 박지성의 발자취를 따를 젊은 선수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4경기 모두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며 기성용을 치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1일 이란 원정에서도 '대표팀 막내' 기성용의 컨디션은 한국의 베스트 일레븐 중에서 가장 월등했습니다.
이제는 기성용의 별명이 '기라드'로 확고하게 굳혀졌습니다. '축구 선수는 경기력으로 말한다'는 축구의 진리처럼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출중한 진면목을 충분히 발휘했기 때문에 제라드와 비견하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과 잠재력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고 있다는 것이죠. 비단 기성용 뿐만은 아닙니다. 신영록은 디디에 드록바와의 스타일과 유사하기 때문에(머리띠 때문도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영록바'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청용은 '블루드래곤'이라는 자신의 별명 이외에 '청날두(호날두를 본따서 만듬)'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성용의 플레이는 제라드와 점점 똑같이 닮아가는 느낌입니다. 사실 기성용은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 때문에 공격 보다는 수비적인 역할에 두각을 나타내던 선수였습니다. 2년전 U-20 월드컵에서는 3백 라인의 중앙 수비수 역할을 맡아 청소년 대표팀의 최후방을 든든하게 지켰고 그해 올림픽대표팀에서는 4-2-3-1 포메이션의 홀딩맨으로서 상대 중앙 공격을 활발히 끊는 역할에 치중을 두었습니다. 서울의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던 2007시즌 전반기에도 홀딩맨 이민성의 십자인대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을용과 이청용 같은 공격 성향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맡았죠. 제라드도 그랬습니다. 리버풀 초창기 시절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면서도 풀백과 센터백까지 오가며 공격보다는 수비에 초점을 두던 선수였으니까요.
하지만 기성용은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공격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의 세기가 날카롭고 정확했기 때문이죠. 조동현호와 박성화호에서는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을 두면서 공격력을 최대한 살릴 기회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선수보는 안목이 탁월한' 허정무 감독의 생각은 두 감독과는 달랐습니다. 실제로 기성용은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한' 지난해 9월 10일 북한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팀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그러더니 이 경기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으며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런 기성용의 플레이는 시간이 흘러 수비 지향적에서 공격과 수비 능력을 모두 겸비한 선수로 진화를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4-4-2를 쓰는 서울과 허정무호의 중앙 미드필더로서 부지런한 움직임을 앞세운 활발한 공격 가담으로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하거나 동료 선수들의 골 기회를 도우며 공수 양면에 걸쳐 다기능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격시의 지능적인 위치선정과 프리킥 및 중거리 슈팅의 위력이 부쩍 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이란 원정에서는 대표팀의 키커로서 동점 프리킥을 연결했는데 리버풀의 키커 역할을 담담하는 제라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킥 능력까지 제라드를 빼 닮을 정도니까요. 더욱이 자신의 주무기인 중거리 슈팅은 제라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국가 대표팀은 '박지성 시프트'를 표방하며 박지성에게 의존하는 공격에 치중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지난해 가을 기성용의 공격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시작하면서 중앙과 측면을 골고루 활용하는 다변화된 공격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전술적 변화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허 감독이 활동량과 움직임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대표팀 전 주장' 김남일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던 것도 기성용의 성장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기성용의 공격적인 역할은 더욱 커질것임이 분명하며 그 존재감 또한 지금의 제라드와 맞먹을 가능성이 큽니다. 리버풀이 그동안 제라드의 존재유무에 따라 경기력이 판가름 되었듯이 말이죠.
제라드는 지난 시즌 페르난도 토레스와 '제토라인'을 형성하며 팀에 많은 득점을 올렸고 이제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4-2-3-1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출중한 공격력을 내뿜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아스톤 빌라전에서는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프리미어리그 득점 공동 2위(26경기 13골)에 올랐습니다. 1위 니콜라스 아넬카(첼시, 15골)가 시즌 중반부터 득점포가 내림세에 빠진데다 최근 리버풀이 눈부신 오름세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리그 득점왕 자리를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제라드의 올 시즌 활약상은 앞으로 눈부시게 발전을 거듭할 기성용의 '미래 활약상'입니다. 기성용도 제라드처럼 출중한 득점력과 어시스트능력을 골고루 겸비했기 때문에 공격적인 면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제라드처럼 경기력이 노련하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많은 골을 넣기에는 무리감이 있겠지만 앞으로 많은 경기에 모습을 내밀며 경기를 읽는 시야가 늘어난다면 제라드의 공격력을 그대로 빼닮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다른 선수에 비해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는 기성용이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중앙 보다는 측면 공격에 중점을 두는 전술, 공격형과 수비형 미드필더의 임무가 명확했던 흐름이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김두현과 김정우, 넓게는 박지성과 김치우 같은 멀티 플레이어까지 공수 능력을 모두 겸비한 중앙 미드필더들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형성되었던 트렌드가 깨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성용의 성장세가 반갑기만 하며 앞으로도 자신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입니다. 과연 기성용이 자신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제라드처럼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여 경기력을 아름답게 키워갈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By. 효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