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이란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둔 허정무호의 BEST11이 굳혀지고 있습니다. A매치 7경기 연속 무득점에 시달리는 정성훈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선수들은 최근 대표팀 경기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모습을 내밀고 있는 것은 물론 오는 4월 1일 북한전에서도 주전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대표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았음에도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이 여럿 있겠지만, 한때 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김남일(32, 빗셀 고베)은 5개월째 태극 마크를 달지 못했습니다.
김남일은 지난해 9월까지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무게감 넘치는 활약을 펼친 대표팀의 최고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대표팀에서의 입지가 낮아지더니 이제는 대표팀과의 인연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김남일 없는 대표팀, 오히려 잘나가고 있다
김남일은 그동안 허정무호의 주장으로서 노련한 경기 운영을 선보이며 손쉽게 중원을 장악했습니다. 상대 중앙 공격을 여유있게 차단하는 것은 물론 정확한 패스로 팀 공격의 활기를 띄우며 팀 전력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당시, 거듭된 졸전으로 망신살을 사던 허정무호에게 있어 김남일의 존재는 한 줄기 빛과 소금 같았죠. 여론에서 '김남일 없는 대표팀은 무용지물', '김남일과 견줄만한 미드필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위치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남일이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잃은 원인 발단은 지난해 9월 10일 북한전 때문입니다. 후반 17분 홍영조에게 파울을 범해 상대팀에 페널티킥을 내준것을 비롯 경고 누적으로 10월 15일 UAE와의 최종예선전에 결장하면서, 더 이상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전 단 한 경기 만으로 그동안 팀을 위해 헌신했던 캡틴을 내쳤다고 보기에는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허 감독은 11월 20일 사우디 아라비아 원정을 앞두고 "(김남일 엔트리 제외)에 대해 고심을 많이 했는데 지금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 정확한 사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허정무호는 지난해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오름세 분위기를 타고 있습니다. 김남일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던 주장 완장은 박지성이 차게 되어 솔선수범 리더십으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김정우-기성용' 조합이 대표팀 허리의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하면서 경기력이 몰라보게 향상된 것이죠.
한국은 10월 A매치 2경기에서 7골을 퍼붓는 화끈한 공격축구를 펼치더니 11월 사우디전 2-0 승리로 19년 묵은 사우디 징크스를 풀었습니다. 지난 이란 원정에서는 극적인 1-1 무승부를 거뒀죠. 결과적으로, 김남일이 빠진 이후부터 대표팀이 잘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남일이 대표팀에 합류하더라도, 그는 '계륵'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죠. 결국 그는 대표팀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김남일의 경기력, 허정무호와 궁합이 안맞다?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김남일이 있을때와 없을때의 허정무호 전술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4-3-3과 3-4-1-2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활동 부담이 적은 전술이라면, 후자는 4-4-2 형태에서 중앙 미드필더들의(수비형, 공격형 구분 없이) 활동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전술이죠. 허정무 감독이 9월 북한전까지 전자에 해당하는 전술을 구사하다 10월부터 후자로 방향을 틀었고 그 과정에서 김남일을 발탁하지 않은 것은 그의 경기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교롭게도 김남일 전 소속팀 수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차범근 감독은 2007년까지 4-3-3을 위주로 3-4-1-2, 4-1-2-1-2 형태의 포메이션을 골고루 구사했지만, 김남일이 고베로 떠난 지난해에는 3월부터 6월까지 4-4-2를 운용했습니다. 수원은 김남일이 떠난 이후부터 미드필더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빠른 템포의 공격력을 앞세워 독주 행진을 펼쳤는데, '조원희-박현범' 같은 순발력이 뛰어난 중원 콤비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반면에 김남일과 스타일이 비슷한 안영학은 주전 도약에 실패했죠.
과거의 김남일은 중원에서 쉴세없이 움직이며 상대팀 공격을 차단했고 특히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몸을 내던졌던 '진공청소기(김남일 별명)'였습니다. 하지만 2004년 8월과 2005년 4월에 걸쳐 오른쪽 발등뼈 골절로 몇달 동안 경기를 뛰지 못하더니(2005년에는 조기에 시즌아웃되었죠.) 2006년 2월과 5월에는 가벼운 오른쪽 발목 부상에 걸렸고 2007년 6월에는 스포츠 헤르니아(탈장) 수술을 받는 등 부상 빈도가 많았습니다.
그로 인해 대표팀에서 교체되는 경우가 빈번했고 당시 소속팀 수원에서 중원에만 머무르려는 모습이 속출하면서 움직임이 예전에 비해 점점 무뎌지게 된 것입니다. 김남일이 2007년 5월에 중앙 수비수로 전환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수비수로 내려가면서 수원이 시즌 초반 슬럼프에서 벗어나 연승가도를 달렸죠. 게다가 김남일이 5월부터 8월 초까지 중앙 수비수로 출장했던 8경기에서 수원은 7승1무의 성적을 거뒀습니다.(제가 수원 경기를 빼놓지 않고 봤기 때문에, 일일히 세봤던 겁니다.)
김남일과 비슷한 사례로, 수비수 조병국(성남)도 마찬가지 입니다. 과거의 조병국은 공격수 출신 답게 빠른 발과 폭발적인 오버래핑을 자랑하는 선수였지만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어느 순간에 발이 느린 수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허정무 감독도 지난해 6월 축구전문 잡지 <포포투>를 통해 "조병국은 노쇠해졌다. 예전에 기량이 좋았지만 예전보다 탄력이나 헤딩력이 떨어졌다"고 했죠. 그만큼 축구 선수에게 있어 부상은 가장 큰 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중앙 미드필더들의 움직임과 활동폭이 요구되는 4-4-2는 '부상 여파로 움직임이 무뎌진' 김남일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했던 기성용, 김정우, 하대성, 김치우 같은 젊은 선수들은 쉴세없는 공수전환과 빠른 순발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입니다. 이번 대표팀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조원희도 빠른 기동력을 자랑하고 있죠. 공격형과 수비형 미드필더의 구분이 뚜렷한 4-3-3이나 3-4-1-2에서는 김남일의 비중이 크겠지만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을 두는 4-4-2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쩌면 그의 경기력이 허정무호 전술과 궁합이 안맞을수도 있는 겁니다.
김남일, 허정무호 재합류 위해 소속팀에 올인해야
김남일은 지난 9일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축구선수라면 당연히 대표팀에 뽑히길 원한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에 같이 가고 싶다. 다시 대표팀에 들어가면 예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좋은 모습 보이겠다"며 대표팀에 재합류하고 싶은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내년이면 33세이기 때문에, 사실상 남아공 월드컵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 출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대표팀 BEST11이 어느 정도 굳혀졌고 4-4-2가 정착되면서, 김남일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할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 볼때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남일은 한때 허정무호 전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대표팀에 재발탁될 가능성은 분명 있을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 시즌 소속팀 고베에 올인해야 합니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소속팀에서의 활약이기 때문이죠. 2008년 33경기에 출장해 J리그 올스타까지 뽑혔던 그의 올 시즌 전망이 밝기 때문에,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이를 놓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경험 많은 선수의 힘이 필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노련미가 허정무호에 적지 않은 효과를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경기력 변신도 필요할 것입니다. 김남일 본인이 예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말한 것 처럼, 이제는 그가 현재의 대표팀 전술에 녹아들 수 있는 활약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가 대표팀에 재승선하여 남아공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By. 효리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