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4라운드 경기의 대부분이 끝난 현재, 지금까지의 'EPL 빅4' 판세는 첼시-리버풀의 '오름세'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스날의 '내림세'로 요약할 수 있다. 첼시와 리버풀이 선두권 경쟁 싸움에서 판세의 키를 쥐고 있다면 맨유와 아스날은 삐걱거리고 있는 셈.
첼시와 리버풀은 나란히 10승3무1패(승점 33점)로 1~2위를 기록중이다.(골득실은 첼시가 15골 차이로 우세) 이는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형성하던 주인공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90년대 후반부터 2007/08시즌까지 '맨유vs아스날', '맨유vs첼시'로 양분되었던 구도가 이제는 첼시와 리버풀이 선두권을 점령하게 된 것. 반면 맨유는 한 경기 덜 치르고도 첼시에 승점 8점 차이로 밀렸으며 아스날은 첼시 보다 10점 뒤지더니 아스톤 빌라에 밀려 리그 5위로 추락했다.
이렇게, 첼시-리버풀이 잘 나가는 원인과 맨유-아스날의 행보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첼시-리버풀,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다
두 팀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전력이 막강했다.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형 선수들을 영입한 효과를 앞세워 빈틈을 찾기 힘든 스쿼드를 구축하게 됐다. 첼시는 14경기 32골 4실점으로 최다득점과 최소실점 1위를 기록중이며 리버풀은 지난 시즌 26라운드까지 11경기 무승부를 기록했던 전적을 비웃듯 14경기서 3경기 무승부에 그치고 10경기서 승리해 '승점 3점 얻는 본능'을 깨우쳤다.
첼시는 특히 포르투갈 국적의 '이적생' 조세 보싱와와 데쿠의 활약이 눈부시다. 보싱와는 오른쪽 측면 뒷공간에서 특유의 빠른 공수전환을 앞세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첼시의 고질적 약점이었던 오른쪽 풀백 활약 부재를 잊게 했다. 데쿠는 시즌 초반 2경기 연속골 활약에 힘입어 팀 전력의 주축으로 자리 잡은 선수. 그는 이번 시즌 이전까지 첼시의 약점으로 거론됐던 '램퍼드-발라크-데쿠-조 콜'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의 날카로운 패싱력과 절묘한 위치선정, 넓은 시야를 활용한 특출난 공격력으로 말해줬다.
첼시 선수 중에서 존재감이 가장 무거운 사나이는 아넬카. 첼시는 주포 디디에 드록바의 부상 공백을 안고 이번 시즌을 맞았지만 아넬카가 14경기서 12골로 리그 득점 1위에 오르는 등 특출한 골 결정력을 과시 중이다. 첼시 약점의 또 다른 요소로 여겨졌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유럽 클럽 감독 경험 부재는 이번 시즌 10승3무1패 리그 선두의 성적을 통해 걱정 거리가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리버풀은 올해 여름 이적시장서 영입한 '新병기' 알베르토 리에라 효과에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왼쪽 윙어로 출장한 리그 10경기 중에 9경기 선발 출장하여 놀라운 기동력을 발휘하며 팀의 고질적 약점이었던 왼쪽 측면 공격의 불안함을 떨쳐냈다. 왼쪽 풀백 파비우 아우렐리우와의 호흡까지 잘 맞아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신임을 톡톡히 얻고 있다. 여기에 디르크 카윗(리언 바벌)-알바로 아르벨로아로 짜인 오른쪽 측면이 거의 매 경기 굳건한 활약을 펼치면서 리버풀의 양쪽 날개가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또 다른 이적생 로비 킨은 지난 11라운드까지 리그 노골에 그쳤지만 9일 웨스트 브롬위치전서 두 골 넣으며 페르난도 토레스의 햄스트링 부상 공백을 메웠다. 킨은 아직 많은 골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최전방서 궃은 역할을 도맡아 '토레스-카윗-제라드'의 득점 루트를 열어주는 이타적인 역할에서 빛을 발하는 중. 그로 인해 리버풀은 카윗이 스트라이커와 오른쪽 윙어를 오가는 전술적 변화를 앞세워 토레스 공백 속에서도 첼시와 치열한 리그 선두 다툼을 벌일 수 있었다.
맨유-아스날, 왜 부진하나?
반면 맨유와 아스날은 지난 시즌 중반까지 치열한 선두 다툼 벌인 것과 달리 이번 시즌 행보가 순탄치 않다. 맨유는 11월 8일 아스날전 이후 리그 3경기서 1승1무1패로 침체 기로에 놓였으며 아스날은 지난 23일 맨체스터 시티전 0-3 완패로 리그 5위로 추락했다.
맨유는 빡빡한 경기 일정에 발목 잡혔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지난 10일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맨유는 전반기에만 상위 10개팀과의 경기를 모두 원정에서 치르고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를 치른 후 리그 원정 경기를 치르는 것은 문제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맨유는 9월 18일 비야 레알전을 마친 뒤 3일 뒤 첼시 원정 경기를 치렀고 지난 5일 셀틱전이 끝난 사흘 뒤에는 아스날 원정 경기를 갖었으나 첼시와 아스날전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23일 아스톤 빌라 원정 경기 0-0 무승부도 마찬가지. 주축 선수들과 일부 백업 선수들까지 자국 대표팀에 차출되었던 피로 여파 때문에 이날 경기서 무기력한 경기력을 펼쳤던 것. 문제는 맨유가 오는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클럽 선수권대회를 비롯 복싱데이까지 앞두고 있어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오언 하그리브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폴 스콜스, 웨스 브라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등이 부상으로 신음중이며 그 여파로 최근 리그 경기 성적까지 영향을 미쳤다.
아스날도 맨유와 마찬가지로 빡빡한 일정 앞에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칼링컵 출전으로 주축 선수들이 지쳤으며 시즌 후반 FA컵까지 치르면 피로가 지금보다 심해져 부상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이미 리그 5위로 추락한 터라 선수들의 부담이 더 가중되고 있는 셈.
아스날은 주축 선수 전력 이탈이 이번 시즌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었는데 결국 이것이 현실화됐다. 미드필더진의 주축이었던 '질베르투-플라미니-흘렙'이 올해 여름 팀을 떠나자 이들의 공백을 메울 영건들(디아비, 데니우손)이 믿을만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수비 부담이 많아지는 악순환까지 이어졌다. 사미르 나스리는 지난 8일 맨유전 두 골로 팀 승리를 이끌었지만 시즌 초반 무리한 개인플레이로 패스 흐름을 끊는 등 팀 전술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전 포지션에 걸쳐 선수층이 얇은 데다 주전과 비주전과의 격차가 심하다는 점. 8일 맨유전에서는 경미한 부상이 있던 월콧-사냐-실베스트레-갈라스가 선발 출장했는데 이는 큰 경기에 투입될 만한 백업 요원이 없다는 것과 선수층이 두껍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월콧은 맨유전 이후 어깨 부상으로 3개월 결장 조치를 받았다. '아데바요르-판 페르시' 투톱의 부상과 징계 공백을 메웠던 공격수 니클라스 벤트너는 올 시즌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상태. 문제는 벤트너를 대체할 '확실한' 백업 공격수 마저 없다.
물론 프리미어리그는 아직 반환점에 닿지 않았으며 순위가 급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시즌 후반기에 판도를 흔들 변수가 곳곳에 놓여 있는 셈. 그런 점에서 첼시와 리버풀이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며 맨유와 아스날은 순위 향상을 잔뜩 벼를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 네 팀이 내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전력 보강을 노릴 가능성이 있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향한 순위 경쟁이 날로 뜨거울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