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더디고 답답한 행보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최종예선 첫 경기인 북한전서 어렵게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연이은 졸전으로 국민들의 실망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서 조1위를 차지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서 4강 신화를 이뤘던 이전의 한국 대표팀과 다르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이 북한전 종료 후 모 일간지를 통해 "팬들 머리 속에서 축구가 지워질까 걱정이 든다"고 말한 것 처럼 한국 축구를 향한 국민적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 6만 관중 매진이던 A매치 경기는 어느 새 1만명 대의 숫자로 뚝 떨어졌고 박성화호가 부진했던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는 ´축구장에 물 채워라´란 말까지 등장해 ´축구 위기론´과 맞물리며 한국 축구의 위상이 추락했다.

문제는 한국 대표팀이 이제 최종예선에 올랐을 뿐이다. 허정무호는 향후 중동 3개국(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UAE) 원정을 앞두고 있어 북한전보다 부담스런 일정을 소화해야 하나 전력에 발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할 거라는 여론의 반응이 곳곳에서 형성된 것도 부담거리. 이대로라면 한국 대표팀, 더 나아가 한국 축구는 암흑기에 접어들지 모를 일이다.

불안한 허정무호, 변화가 없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달 28일 요르단전과 북한전에 참가하는 23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베이징 올림픽 엔트리에(예비 엔트리 포함) 있던 9명의 젊은 선수들을 발탁하는 실험을 단행해 ´젊은 피´들이 허정무호 주전 경쟁에 뒤어들어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그러나 젊은 피로 바뀐 허정무호의 경기력은 이전과 전혀 변화 없었다. 지난 10일 북한전을 포함 올해 북한과의 A매치서 4경기 연속 무승부를 거둔데다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지 못해 고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격루트는 여전히 단조로운 측면 공격을 일관했고 정확한 크로스와 빠르고 부드러운 패스워크는 경기 내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횡패스로 상대 선수에 공을 빼앗겨 역습 공격을 허용하는 현실.

가장 시급한 과제인 원톱의 활용 역시 취약하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 1월말 출범 이후 박주영과 고기구, 안정환을 원톱으로 실험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조재진마저 A매치 8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자신의 이름값을 해내지 못했다. 최근에는 대표팀 새내기 신영록과 서동현이 원톱 옵션에 분류될 정도로 한국 공격력을 진두지휘할 최전방 공격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허나 서동현은 4-4-2 포메이션을 쓰는 수원에서 주전 오른쪽 윙어로 활약중인 선수여서 원톱과 거리감이 있다.

이렇게 허정무호는 졸전을 반복하다보니 질적인 축구로 승부를 내려는 전략이 사라졌고 무조건 ´중앙으로 띄우고 보자´ 식의 ´퇴보된´ 공격을 펼치고 있다. 북한전서는 수비진이 조재진을 향해 부정확한 롱패스를 날렸으나 상대 수비를 분산 시키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북한에게 역습 기회를 내주는 역효과를 봤다. 김치우의 왼쪽 공격수 전환은 2경기 연속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허정무 감독이 여전히 실험을 거듭한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 축구의 아킬레스건인 극심한 골 결정력과 부정확한 크로스도 개선되지 않았다. 한국은 지난 5일 요르단전서 ´슈팅 19개 유효슛 5개 1골´, 10일 북한전서 ´슈팅 17개, 유효슛 4개, 1골´을 넣는 골 결정력 부진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크로스는 여전히 완만한 포물선을 그려 원톱 조재진의 머리를 겨냥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허정무 감독은 소집훈련 중 횡패스를 하는 선수가 있으면 가차없이 야단칠 정도로 정확한 패스워크를 주문했고 골 결정력을 높이는 훈련을 계속 치렀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점수 줄만한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요르단전이 끝난 뒤 취재진을 향해 "허정무 감독님이 더 이상 실험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고 말한 대표팀 주장 김남일의 뼈있는 한마디가 허정무호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허정무호, 정신적 세대교체가 없다

허정무호의 화두는 세대교체다. 지난 요르단전 BEST 11으로 올림픽 대표팀 출신 선수가 6명 기용됐고 26세 이하 선수가 9명이나 선발로 투입돼 젊은 선수 자원이 허정무호에 최대한 활용되고 있다. 4년 전 아테네 올림픽 이후 검증된 해외파와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신 선수들만 기용하고 올림픽대표팀 출신 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았던 본프레레 시절과 대조된 행보.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의지 만큼은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세대교체는 몸과 몸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기존 선수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어린 선수에게 당근을 주는 주전 경쟁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타이밍과 흐름은 자연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이후 쿠엘류-본프레레가 세대교체에 실패해 2년의 시간을 낭비했고 아드보카트-베어벡, 그리고 허정무 체제에서 젊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세대교체의 시행 착오를 겪어 경기력 저하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 축구의 상징이었던 투지와 강한 체력, 고유의 색깔이던 화끈한 승부는 지금에 이르러 실종됐다. 과거에는 기술이 부족하다보니 체력을 보완하며 실전에서 상대 선수를 이기겠다는 의지를 발휘해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들의 기술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지금은 브라질의 테크닉을 흉내낸다는 여론의 비아냥처럼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선수들의 의지와 투지가 꺾였다.

분명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세계 수준이 아니다. 더구나 축구는 개인 종목이 아닌 단체 종목이기 때문에 개인기보다 완벽한 조직력이 더 중요시 되는 스포츠이며 한 팀이 꾸준히 좋은 성적 내려면 자연적인 세대교체가 가능해야 한다. 한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선전했던 것은 어느 한 선수의 개인기가 아닌 세대교체를 통해 주전 경쟁 시스템을 확립시킨 조직력의 승리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허정무호는 젊은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을 뿐 ´정신적 세대교체´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골을 넣기 위해 끝가지 골을 좇는, 상대팀 선수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나태한 모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 축구의 위기론은 계속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의 한국 축구, K리그서 길을 찾아라

일각에서는 한국 축구의 위기 극복을 위해 대표팀의 소집훈련 늘리기와 장기합숙을 주장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타당치 않다. 대표팀은 프로팀과 유소년팀 처럼 서로 모여서 기본기를 훈련하는 팀이 아닌 최고의 선수를 모아 최상의 조합을 형성해 최적의 전력을 만드는 것이 그 목표다. 여기서 말하는 최고의 선수는 개인기량과 전술 이해, 실행 능력의 3박자가 뛰어난 선수를 뜻한다.

한국 축구 그리고 대표팀이 위기에서 탈출하려면 K리그의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 대표팀을 위해 K리그를 희생했던 과거와 다른길을 걸어야 하며 K리그 만큼 선수들의 훈련 및 전술 능력, 수많은 실전 경험을 길러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한국 클럽들이 2년 연속 부진한 경기력을 펼쳐 팬들의 실망감을 안긴 터여서 K리그의 국제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한국 클럽이 중국 클럽에게 패하는 일이 잦을 정도로 K리그가 국제 무대에서 침체기를 걷고 있다.

대표팀의 경쟁력은 곧 자국 리그 수준에서 결정된다. 일본은 "100년 이내에 월드컵 우승으로 세계 최고의 축구 국가가 되겠다"는 백년 대계를 모토로 1993년 J리그를 야심차게 출범했다. 그 결과 많은 인재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거듭나면서 아시아 중위권을 전전하던 일본 축구는 2000년과 2004년 아시안컵 우승으로 아시아 최고의 축구 국가로 거듭났고 지금도 그 위치를 단단히 지키고 있다. 최근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역시 일본 클럽들의 선전이 돋보일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K리그의 역사는 J리그보다 10년이나 더 앞서지만 객관적으로 J리그의 평가가 더 앞서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올해 상반기에 실사 조사를 벌인 끝에 아시아 프로리그 평가 순위에 J리그를 A등급으로 올리고 K리그를 B등급으로 분류했기 때문. K리그는 승강제 유무, 전 프로팀의 독립 법인화, 다양하지 않은 프로 선수 계약이 AFC의 지적을 받았는데 특히 J리그가 시행하는 승강제를 도입하지 않아 리그 경쟁력이 J리그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세계 축구의 평준화와 치열한 정보 탐색이 벌어지는 현 시점에서 한국 대표팀은 더 이상 특정 선수 활약을 의존할 수 없게 됐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통해 한국 축구를 빛낼 인재들을 수없이 배출해야 하며 그 토대를 K리그에서 마련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이루기 어렵겠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지금까지 한국 축구가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한국 대표팀 문제점은 언젠가 깨끗하게 개선되어 월드컵 본선 진출 좌절 같은 부정적 시나리오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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