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마운드의 대들보였던 한기주(21)가 한국 야구 대표팀에서 ´위기의 남자´가 됐다. 베이징 올림픽 본선 미국전(13일) 일본전(16일) 대만전(18일)에서 연이어 난타를 당하면서 구원투수의 제 역할을 못하면서 팬들의 비판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야구 대표팀이 거침없는 연승 행진으로 1위를 확정지은 것과 달리 한기주는 야구팬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로서 부진했던 임경완(롯데)의 ´임 작가´라는 별명을 따 ´한 작가´라는 별명이 한기주에게 붙여졌으며 ´국내용´, ´은하철도 한기주´, ´99.9 한기주´ 등의 별명이 하나 둘 씩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패러디 한기주 1집 앨범 목록과 한기주 삼행지도 네티즌들의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그러나 한기주에 대한 여론 악화를 논하기 전에 그를 향한 아쉬움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난타를 당한것과 대조적으로 KIA에서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 그는 KIA에서 150km를 넘는 파워 피칭으로 상대 타자들을 요리하며 불펜이 취약한 팀의 마운드를 무리한 출장을 거듭할 정도로 스스로 책임졌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공의 구속을 조금 줄이고 코너워크에 신경 썼다면 외국인 타자들에게 고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팬들은 프로야구에서 잘나가던 한기주가 올림픽 무대에서 부진한 모습 때문에 그를 '국내용'으로 비하하고 있다.

그러나 한기주의 대표팀 동료이자 21세 동갑인 류현진(한화)도 불과 올해 봄까지 '국내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프로야구에서 맹위를 떨친것과 반대로 국제무대에서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한기주와 똑같은 케이스를 걷고 있었다. 그런 류현진은 지난 15일 캐나다전에서 9이닝 무실점으로 한국의 완봉승을 이끌며 '국내용'의 꼬리표를 떼고 '국제용 괴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직 어린 한기주에게는 류현진처럼 국제 무대에서의 부진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지금의 침체를 남은 올림픽 경기에서 이겨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지 모른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김경문 감독이 3경기 연속 부진했던 자신을 계속 중용할 것이라며 '믿음'의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을 한기주가 남은 경기에서의 호투로 보답하면 자신을 향한 국내팬들의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기주에게 있어 1년 후배 김광현(20, SK)은 자신이 침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될 지 모른다. 김광현은 지난해 3승7패의 부진 속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웃음을 잃지 않았고 올 시즌에는 김성근 SK 감독이 '웃음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얼마 안가서 웃음을 짓는 횟 수가 다시 늘어났다. 심지어 결정적인 고비 상황에서 상태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면 펄쩍펄쩍 뛰며 금새 활기를 되찾았다.

김광현은 자신이 부진하거나 누가 웃음을 짓지 말라고 하더라도 전혀 동요치 않는다. 포수 박경완과 사인을 주고 받을 때 지긋히 미소를 띄우며 즐겁게 경기를 펼쳤고 그 원동력은 올해 프로야구 다승 2위(11승)와 베이징 올림픽 일본전 맹활약으로 이어졌다. SK를 싫어하는 팬들조차 김광현의 일본전 호투를 칭찬할 정도로 야구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광현이 웃음을 통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 처럼 한기주에게도 자신의 부담감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 또는 전환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누가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 아닌 한기주 본인 스스로가 고개를 들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류현진과 김광현이 부진을 털고 '업그레이드' 된 것 처럼 최근의 구위 난조에 연연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진정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한기주가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부진으로 내리막길을 걷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기주 이전까지 KIA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선수는 '제2의 선동렬'로 각광 받았던 김진우(임의탈퇴 공시)였다. 한기주가 김진우처럼 위기의 고비를 못넘긴 자책감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 패배하지 않기를 그를 지켜보는 팬들이 바라보고 있다.

한기주는 김경문 감독이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것처럼 언젠가 마무리 투수로 한국 야구를 빛낼 잠재력이 충분하다. 불펜이 약한 KIA에서 무리한 출장을 거듭하며 독보적인 활약을 펼칠 정도로 자신의 능력을 꽃피우는 중이다. 그런 그가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이기고 당당히 일어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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