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베이징 올림픽 8강 진출의 꿈이 실패로 끝나자 축구팬들에게 거센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존재가 두 명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박성화(53) 올림픽 대표팀 감독과 박주영(23, 서울)이다. 전자는 본인 스스로 인정했던 전술의 패착으로 자신의 지도력에 오점을 남겼고 후자는 붕대 투혼 속에서도 ´에이스´로서의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박성화 감독과 박주영의 깊은 신뢰 관계가 한국 축구판에 잘 알려진 것은 사실. ´박주영을 잘 아는 지도자는 박성화 감독´이라는 말이 축구계에 입버릇 처럼 이리저리 알려질 정도로 두 사람은 감독-선수의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 너무나 각별한 사이였다. 그러나 올림픽 8강 진출 실패의 주 원인으로 박성화 감독의 지나친 ´박주영 집착´이 여론에서 설득력있게 제기되면서 박성화 감독은 선수 한 명의 전술 능력에 기댔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박성화호는 출범 초기부터 온두라스전에 이르기까지 박주영을 중심으로 하는 전술이 경기력의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 올해 초 유럽 전지훈련에서 ´신참´격인 모 선수가 박주영에 맞춰가는 전술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그를 향한 지나친 의존도를 키웠던 것은 사실. 에이브러험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을 본따 ´박주영의, 박주영에 의한, 박주영을 위한 축구´라는 ´패러디 키워드´를 떠올린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올림픽대표팀에는 ´박주영 시프트´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었다. 팀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공격력을 펼칠 수 있는, 다른 선수보다 월등한 공격력을 앞세워 팀의 공격을 주도하는, 여기에 골 까지 잘 넣는 ´축구 천재(물론 예전 별명이지만)´ 박주영의 활약에 따라 팀의 경기 내용과 결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박주영 시프트는 어디까지나 ´양날의 검´에 불과했다. 뛰어난 에이스를 보유한 것이 박성화호 전력에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특정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팀 전체를 동맥 경화에 걸리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 박성화 감독은 지난달 세 번의 국내 평가전을 통해 박주영 시프트를 완성시켰지만 정작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그의 의존도를 높이다 오히려 ´한국 공격 둔화´라는 역효과를 맞아 무기력한 본선 탈락의 쓴맛을 봤다.

물론 한 선수의 지나친 의존도로 침체에 빠진 존재는 여럿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박지성 시프트´ 역효과로 2년 동안 답답한 공격력을 이어간 한국 국가대표팀이 대표적이며 ´무결점 스트라이커´였던 안드리 셉첸코가 첼시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조세 무리뉴(현 인터밀란) 감독이 주도했던 ´드록바 중심´ 공격 전술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그 의존도를 탈피하려면 다각적인 공격 전술이 필요한 것이 정답이다. 문제는 박성화 감독은 박주영 중심 공격력의 약점이 지난해 가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박주영 카드를 계속 고집했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 선수들도 박주영 못지 않게 출중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지만 박성화 감독은 끝가지 박주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이근호는 박주영 시프트 속에서 자신의 활약이 많이 가려졌던 대표격. 지난해 상반기까지 ´베어벡호의 에이스(당시 핌 베어벡 전 감독이 올림픽대표팀 사령탑까지 겸직)´로서 맹위를 떨치던 그는 박성화호에서 에이스(박주영) 보조 역할에 치중을 두었다. 이것 하나 만으로도 박주영 시프트의 폐혜를 가늠할 수 있는 토대라 할 수 있다.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한다´는 공격수의 주 임무처럼 이근호는 박주영보다 더 많은 골을 넣는 선수였던 것이 사실. 이근호가 올림픽 대표팀에서 4골 넣은 경기는 모두 한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박주영은 2006년 11월 일본전 이후 1년 9개월 동안 골 불운에 시달렸고 올 시즌 K리그에서는 이근호의 기록(20경기 9골 5도움)이 박주영(15경기 2골 2도움)보다 절대적 우세에 있다. 그것도 두 선수는 소속팀 대구와 서울에서 주로 왼쪽 측면 공격 요원에 배치돼 포지션까지 비슷했다.

그러나 박주영보다 ´골을 잘 넣는´ 이근호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박주영을 보조하는 역할에 치중을 두는 모습이 역력했다. 카메룬전과 온두라스전에서 쉐도우 스트라이커 박주영의 공격을 최전방에서 보조하는 형식의 타겟맨을 소화했지만 ´강력한 포스트플레이가 요구되는´ 타겟맨 자리는 윙어 성향이 강한 이근호에게 맞지 않는 포지션이다.

각급 대표팀과 K리그에서 활발한 공격 기회로 펄펄 날았던 이근호의 올림픽 본선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오히려 상대팀 수비수와의 잦은 몸싸움으로 공을 잡을 기회가 많아지는 대신 자신의 빠른발을 앞세워 공격을 전개하는 모습이 줄어 들자 박성화호 공격력 저하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실 박성화 감독이 박주영 시프트로 재미를 봤던 시절은 200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와 2005년 카타르 청소년 대회 였을 뿐이다. ´신영록-김승용´ 투톱이 뒷쪽에 있던 박주영에게 많은 공격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 박주영 시프트가 탄생한 시초였으며 그는 자신의 공격력을 보조한 두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두 대회에서 득점왕을 석권했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이 불과 3~4년 전까지 아시아권 혹은 군소격인 국제 무대에서 제대로 통했던 박주영 시프트를 올림픽 무대에서 통할거라 기대했던 것은 무리수가 있었다. 지금의 박주영은 3년 전 자신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며 부상과 부진에 따른 슬럼프로 인해 더 이상 예전 같은 공격력을 뽐내지 못했다. 그런 선수에게 지난해 10월 시리아 원정을 시작으로 ´팀 공격의 핵심´이라는 역할을 끊임없이 부여했던 것 자체가 아이러니.

더구나 박성화 감독은 2005년 네덜란드 U-20 월드컵에서 박주영 시프트로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박주영은 우즈베키스탄-쿠웨이트를 거쳐 네덜란드로 날아온 무리한 국가대표팀 원정 차출에 시달리며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은 박주영에게 팀 공격의 중심 역할을 어김없이 부여했지만 결과는 패착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마지막 본선 경기 브라질전에서는 한번도 쓰지 않았던 ´박주영 원톱´ 카드를 쓸 정도로 박주영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3년 전에 이어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주영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또' 실패한 박성화 감독. 지난달 세 번의 국내 평가전에서 박주영 중심의 공격력에 집중했음을 생각할 때 올림픽에서의 기대 이하 성과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카메룬-이탈리아전에서 부진한 박주영이 온두라스전에서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맹활약을 펼쳤지만 부상을 참고 뛰는 붕대 투혼 속에서 장및빛 꿈과 달콤함은 없었다. 박주영 시프트로 재미를 보려던 박성화호의 베이징 출항기 마지막 맛은 이렇듯 쌉싸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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