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는 금메달이 아닌 ´어떠한 경우든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는 선수의 투혼일지 모른다. 특히 남자 역도 선수 이배영(29, 경북개발공사)이 부상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투혼은 ´강한 도전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올림픽 정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멋진 장면이었다.

이배영은 12일 저녁 중국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69kg급 결승전 도중 왼발 부상으로 끝내 메달의 꿈을 접었다. 역기를 드는 순간 왼발 통증을 극복하지 못한채 무릎을 꿇었지만 실패에 아쉬운 듯 앞으로 엎어지며 죽 미끌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쉽게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서도 두 손으로 바를 끝까지 잡는 그의 ´부상 투혼´은 국민들은 물론 중국 관중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받는 감동의 물결을 안겨줬다.

이 장면을 지켜봤던 네티즌들은 일제히 이배영의 투혼을 높이 치켜세우며 찬사를 보냈다. 한 네티즌은 "당신의 의지는 금메달 감이다. 당신의 투혼은 금메달리스트보다 훨씬 값지고 빛났다. 당신에게 박수를 보낸다"라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네티즌 역시 "금메달 이상의 감동이다. 당신의 끝없는 투지에 찬사를 보낸다"는 등 그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투혼이란 존재는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귀한 정신이다.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축구도 그 중 하나.

대한민국에서 축구라는 종목은 투혼 그 자체였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온 국민을 감동 시켰던 이임생의 부상 투혼과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을 달성하기까지 온갖 고난을 이겨냈던 투혼이 사람들에게 쉽게 떠올릴 법 하다. 끝까지 상대팀을 이기겠다는 선수들의 투혼은 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고 국민들은 그들에게 큰 사랑을 보답하며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주요 국제 무대에서 태극전사들을 열렬히 성원했다.

그런 이유에 편승해서 인지 2년 전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 축구 대표팀의 붉은색 유니폼 상의 뒷자락 끝에는 ´투혼´이라는 한글 문구가 새겨졌다. 유니폼을 제작한 나이키 측이 태극 마크를 단 선수들의 자긍심과 투지를 북돋을 수 있도록 ´센스´를 발휘한 것. 당시 대표팀의 막내급이었던 박주영이 "유니폼에 새겨진 투혼이라는 두 글자를 보면 가슴에 뭔가 뭉클한 것이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을 정도.

그러나 한국 축구는 언젠가 부터 국민들에게 실망스런 모습만 안겨줬다. 한일 월드컵 이후 ´투혼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잦은 졸전 여파가 2006 도하 아시안 게임과 지난해 아시안컵 조별 예선 부진, 올해 국가대표팀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성화호가 지난 두 경기 동안 보여준 것은 프로 정신도, 투혼도, 애국심도 아닌 팬들에 대한 배신 뿐이었다.

박성화호는 올림픽 본선 이전까지 안정적인 조직력 구축과 박주영의 슬럼프 탈출 조짐, 최상의 와일드카드 선택, 7월 평가전 3전 3승이라는 긍정적인 요인 때문에 ´올림픽 대박´의 기대를 모았던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번 올림픽 개최지인 중국이 한국과 시차가 적고 기후와 음식도 한국과 비슷해 우리 선수들이 온두라스-이탈리아-카메룬 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성화호는 첫 상대였던 카메룬전부터 불안했다. 후반 22분 박주영의 골로 승리 분위기를 굳혔지만 14분 뒤 상대팀의 역습 한 방에 수비진이 이를 소홀히 여기면서 틈을 내준 끝에 동점골을 내주며 다 잡던 승점 3점을 놓치고 말았다. 이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사상 첫 메달 목표를 노리는 박성화호의 ´본 모습´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고 이구동성 박성화호를 향해 ´1-0 이후 방심한게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냈다.

두번째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은 벤치의 전략과 선수들의 활약, 정신력 등에서 한국의 명백한 완패였다. 8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탈리아와 상대하여 수비 위주의 전술을 꺼내들었지만 오히려 ´지오빈코-로키-로시´로 짜인 상대팀 공격수진에 번번이 농락 당하며 0-3으로 완패했다. 그것도 중앙 한 가운데에서 세번이나 뚫리는 모습을 보이며 ´단점을 알고도 고치지 못한´ 박성화호의 허술함이 그대로 노출됐다.

투혼으로 똘똘 뭉친 팀이라면 한번의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수비라인을 두껍게 다진 뒤 매서운 공격을 펼쳐 골을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박성화호는 경기에서 지고 있음에도 의미없는 롱패스와 부정확한 횡패스 남발, 공격 활로를 잃은 선수들의 비효율적인 움직임, 상대팀 선수의 위치를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느슨한 방어로 패착에 패착을 거듭하다 전쟁터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평가전이 아닌 올림픽 무대에서 맥 빠진 경기력을 거듭한 것에 국민들의 실망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팬들이 박성화호에 실망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 개인 스스로의 능력. 박성화호는 K리그에서 펄펄 나는 선수들과 해외파, 와일드카드까지 동원해 18명의 최정예 팀을 구성했지만 그들이 빚어낸 경기력은 ´선수 능력´보다 못하다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해외 축구의 트렌드 습득이 좋으나 막상 국제 대회에서 이른바 ´소심축구´를 고집해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낸 박성화 감독 역시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

대표팀에게서 투혼이 실종된 근본 문제는 선수들에게서 태극전사라는 사명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축구는 스타 의식에 사로잡힌 선수들의 안일한 정신 상태 때문에 그동안 쌓아왔던 위상과 가치가 추락했다. 지난해 음주파문과 이천수의 폭행 구설수, 기성용의 미니홈피 파문, 지금도 그치지 않는 K리그에서의 잇따른 추태 등에 이르기까지 팬들의 마음을 등돌리게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사명감은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긍심이지 절대적인 애국심도 아니고 화려한 축구 실력과 명성으로 채워갈 수 없다. 특히 대표팀은 금전적인 이득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프로팀과 운영 체계와 다르기 때문에 사명감을 통한 선수들의 정신적인 집중과 강인함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그 사명감 결여가 박성화호의 좌초 원인으로 이어졌고 팬들의 감동을 자극하는 ´투혼´이라는 존재까지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예전보다 부쩍 좋아진 환경과 해외 연수 등으로 ´예전 대표팀 세대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박성화호의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땀흘리며 정신력으로 버틴 선배들의 투혼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경기 내내 죽기살기로 뛰어다니며 상대팀 선수들을 제압하겠다는 불굴의 정신력, 피 흘려도 붕대 감고 경기에 임하던 선배 선수들의 투혼을 기억하며 태극 마크의 사명감을 깨닫고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

어쩌면 나라를 대표하겠다는 사명감이 선수들에게 힘들고 괴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축구팬들이 옛날부터 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을 박성화호는 물론 한국 축구의 젊은 주역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축구팬 그리고 국민들은 지난 이탈리아전과 같은 무기력한 모습을 두번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비록 박성화호는 올림픽 D조 본선 마지막 경기인 온두라스전과 상관없이 8강 진출 실패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온두라스전 만큼은 그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뛰었던 선수들이 피땀흘려 바쳤던 투혼과 자긍심, 희생정신을 가슴깊이 되새겨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성화호는 모든 축구선수들의 로망인 태극전사로 선택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비록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역도 선수 이배영의 투혼´과 견줄만한 부끄럼 없는 모습이 절실하다. 스타의식에 젖은 젊은 선수들이 태극 마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진정한 태극 전사로서 축구팬들을 감동시키는 투혼을 ´박성화호의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를´ 온두라스전에서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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